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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2:07

터키 (Turkey)

위치 : 아시아 대륙 서쪽경위도 : 동경 35° 00", 북위 39° 00"면적(㎢) : 780580해안선(㎞) : 7200시간대 : UTC+2수도 : 앙카라(Ankara)종족구성 : 터키인 (80%), 쿠르드인 (20%)공용어 : 터키어, 쿠르드어, 아랍어종교 : 이슬람교 (99.8%)독립일 : 1923년 10월 29일국가원수 : 굴(Abdullah Gul) 대통령(2007.8 취임)국제전화 : +90정체 : 공화제통화 : 터키 리라(YTL)인터넷도메인 : .tr인구(명) : 71,892,807 (2008)

평균수명(세) : 73.14 (2008)출산률(명) : 1.87 (2008)1인당 GDP($) : 12,900 (2007)실업률(%) : 9.9 (2007)수출 규모(억$) : 1,153 (2007)수입 규모(억$) : 1,621 (2007)인구밀도(명/㎢) : 92 (2008)정식명칭은 터키공화국(Republic of Turkey)이다. 동쪽으로 이란·아르메니아·그루지야, 남쪽으로 이라크·시리아, 북서쪽으로 불가리아·그리스와 국경을 접하고, 북쪽으로 흑해, 남쪽으로 지중해, 서쪽으로 에게해(海)·마르마라해에 면한다.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반도 전부와 보스포루스 해협·다르다넬스 해협·마르마라해를 사이에 두고 유럽의 발칸 반도, 동(東)트라키아 지방에 걸쳐 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관문적 위치로 인해 역사적으로 동방과 서방의 문화를 연결하는 교차로 역할을 해왔다. 에게해에서 그리스와 해역·상공·영토에 관련된 분쟁을 벌이고 있고, 1984년부터 쿠르드족(族)이 분리 독립을 주장하며 터키 정부를 상대로 유혈투쟁을 벌여왔다. 행정구역은 81개주(il)로 되어 있다.

비자 정보

최소 6개월 이상 유효한 여권만 있으면 3개월까지는 비자 없이 여행할 수 있다.

공항 정보

인천국제공항에 서이스탄불 국제공항으로 직항하는 항공편이 매주 2번 아시아나항공과 터기항공에서 운행하고 있다. 이스탄불 국제공항은 국제선 청사와 국내선 청사가 나뉘어져 있는데, 두 청사 간은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되고 있다. 공항에서 시내로 가려면 하바스 공항버스를 이용하면 편리한데 공항출구를 나오면 버스가 바로 대기하고 있다. 버스는 30분 간격이나 1시간 간격으로 운행된다.

입국 정보

입국시 담배 200개피(터키 면세점에서 구입했을 경우에는 400개피), 시가 50개피, 잎담배 200g(터기 면세점에서 구입했을 경우 500g), 술은 75㎖, 와인과 독한 술은 5ℓ, 초콜릿은 1kg, 커피 1.5kg까지는 면세받을 수 있다. 고가의 소지품은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소유자의 여권에 기재해야 하고, 출국할 때 다시 확인을 한다.

대중교통 정보

- 장거리 버스터키의 장거리 버스노선은 다른 유럽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잘 갖추어져 있다. 터미널은 터키어로 오토가르라고 부르는데 어느 도시나 도심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이용하기에 매우 편리하다.

- 터키국철 TCDD유럽의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시설이 떨어지는 편이고, 노선망도 잘 연결되어 있지 않은 편이다. 요금은 버스보다 싸지만 편수도 적어서 이용하는데 버스보다 불편한 점이 많다.

- 돌무쉬시내뿐만 아니라 근교 마을까지 이동하는 교통 수단으로 터키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교통수단이다. 돌무쉬는 대형 미제차를 개조한 것인데 따로 정거장이 없으므로 승하차가 자유롭다.

여행 Tip

터키는 불안정한 경제상황으로 인해 외국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범죄가 늘고 있다. 따라서 지나치게 친절한 사람은 경계를 하는 것이 좋고, 낯선 사람이 주는 음식물이나 음료는 거절하는 것이 안전하다.

전압

전압은 220V이고, 전류는 50Hz이다. 우리나라와 플러그 방식이 달라 220V 플러그가 110V 플러그처럼 납작하게 생겼다. 한국에서 가져간 전자제품을 사용하려면 별도의 어댑터가 필요하다.

전화

터키에는 토큰방식과 카드방식의 공중전화가 있다. 카드는 우체국, 신문 판매점, 공중전화 박스 근처의 노점상 등에서 구입할 수 있다. 공항이나 고급호텔의 로비에서는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공중전화가 있다.터키에서 한국으로 국제전화를 하려면, 00+82(한국 국가번호)+0을 제외한 지역번호+상대방 전화번호를 누르면 된다. 터키 공중전화로 국제전화를 걸면, 인플레이션이 워낙 심해서 요금이 금방 떨어지므로 카드를 여러 개 준비하던지 장거리 전화를 걸 수 있는 곳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세금환불

터키의 부가가치세는 8%~15% 정도이다. 면세점(Tax Free)으로 지정된 상점에서 구매한 물품에 대해서만 세금을 돌려 받을 수 있다.상정에서 소정의 서류를 작성하고 도장을 찍어서, 출국할 때 세관에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바로 현금으로 돌려주는 경우는 드물며, 절차도 매우 복잡하다.

공중화장실 이용

대분분의 공중화장실은 유료이지만 시설이 매우 낙후한 편이며, 청결상태도 좋지않다. 터키식 변기는 우리나라의 재래변기와 비슷하게 생겼으며, 저렴한 식당이나 공중화장실은 대부분 이러한 형태의 변기이다. 물탱크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사용한 후에 물을 떠서 부어주어야 한다. 화장지가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리 준비하는 것이 좋다. 깨끗한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백화점이나 대형 쇼핑몰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숙박
이스탄불과 해안의 리조트 지역 등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적합한 숙박시설을 찾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 호텔
터키에서는 호텔을 오텔이라고 부른다. 총 5등급으로 나뉘어지고 별이 많을수록 등급이 높은 것이다. 조금 저렴한 호텔에서부터 국제적인 특급호텔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등급과 서비스의 질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 미리 예약을 하는 것보다 직접 확인하고 투숙하는 것이 낫다. 오래된 아파트를 개조한 아파트형 호텔을 발견할 수 있는데 가족단위 여행객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다.

- 게스트하우스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고, 집과 같은 편암함을 느낄 수 있다.

-펜션
터키어로는 판시온이라고 부르며 한국의 민박과 비슷하다. 가족이나 부부가 경영하는 것이 많다. 시설이나 청결상태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라 할 것이 없으므로 가격도 상당히 다양한 편이다. 터키 각지에서 발견할 수 있고, 가족단위 여행객들이나 배낭여행족들이 많이 이용한다.

-유스호스텔
다른 유럽국가들처럼 유스호스텔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다. 이스탄불과 큰 지방도시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저렴한 가격 때문에 많은 배낭여행족들이 찾는다.
오전 2:02

카파도키아 (Cappadocia)


카파도키아는 로마의 동맹국이었으나 차차 속국, 속주로 독립성을 잃어갔다. BC 6세기의 문헌에 의하면 당시 카파도키아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조로아스터교가 널리 퍼져 있었다. 카파도키아는 BC 190년 로마가 마그네시아에서 승리를 거둘 때까지는 셀레우스 왕조의 세력권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 이후는 로마에 충성을 바쳤으며 11세기까지 동로마제국의 보루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실크로드의 중간거점으로 동서문명의 융합을 도모했던 대상들의 교역로로 크게 융성했으며, 초기 그리스도교 형성시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로마시대 이래 탄압을 피하여 그리스도 교인들이 이곳에 몰려와 살았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아직도 수천 개의 기암에 굴을 뚫어 만든 카파도키아동굴수도원이 남아 있다. 약 3백만년 전 화산폭발과 대규모 지진활동으로 잿빛 응회암이 뒤덮고 있으며, 그 후 오랜 풍화작용을 거쳐 특이한 암석군을 이루어 많은 관광객이 찾는다.
오전 2:10

파묵칼레 (Pamukkale)


데니즐리에서 2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파묵칼레는 터키어로는 '목화 성'이라는 뜻이다. 수천년 동안 지하에서 흘러 나온 뜨거운 온천수가 산의 경사면을 따라 내려가면서 지표면에 수많은 물웅덩이와 종유석, 석회동굴 등을 만들었다. 물에 포함되어 있는 미네랄 성분이 지표면을 부드러운 백색 석회질로 덮어 버려 아름다운 지형을 만들어 냈다. 이러한 아름다운 경관 때문에 고대에는 성스러운 지역으로 여겨졌으며, 로마시대에는 온천으로 유명했다. 최근에는 무분별한 개발과 상업화로 물이 거의 메말라 있다. 현재는 이곳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맨발로만 입장이 가능하다. 파묵칼레의 석회붕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전 1:52

이스탄불 (Istanbul)


옛 이름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이며, 그리스시대에는 비잔티움(Byzantium)이라고 하였다. 보스포루스해협의 남쪽 입구에 있으며, 아시아와 유럽에 걸쳐 있다. 1923년까지 1,600년 동안 수도였던 이스탄불에는 그리스·로마시대부터 오스만 제국시대에 이르는 다수의 사적이 분포해 있다.보스포루스해협·골든혼(Golden Horn)·마르마라해(海)에 의하여 베욜루·이스탄불(파티프)·위스퀴다르의 3지구로 대와는 골든혼의 갈라타교와 아타튀르크교로 연결되어 있다. 베욜루 남부의 갈라타 지구는 중세에 제노바나 베네치아의 무역상사가 있었던 곳이며, 부두에는 국내외의 배들이 모이고 아시아쪽의 하이달파샤역(驛)으로 떠나는 페리보트도 이곳을 기점으로 삼았다. 금융·무역의 중심지로서 오스만은행을 비롯하여 국립은행·외국은행이 많다.


베욜루 동부는 택시광장을 중심으로 일류 호텔·레스토랑\·극장·대상점 및 각국의 영사관이 늘어서 있다. 골든혼의 남쪽인 이스탄불은 옛날의 이스탄불이 자리잡았던 전통 있는 지구로, 지금도 비잔틴시대의 성벽이 서쪽 경계를 둘러싸고 있다. 아흐메드 사원(블루모스크)·쉴레이만 사원의 2대 이슬람 사원을 비롯하여 예니성당·하기아 소피아(현재 박물관)·토프카피 궁전(현재 박물관)·고고학박물관\·터키-이슬람 미술관, 고대 오리엔트미술관, 그리고 이스탄불대학 등이 있으며 이 도시의 전성기를 생각나게 하는 대시장(그랜드 바자르)도 있다.


보스포루스해협을 사이에 둔 아시아쪽의 위스퀴다르는 전형적인 터키 양식의 도시로 많은 이슬람교 사원이 있으나 지금은 신흥주택지로 발전하고 있으며, 유럽 쪽과는 페리보트가 왕래한다. 세리미에 병영(兵營)과 나이팅게일 병원이 있으며 남부에는 바그다드 철도의 시발역인 하이다르파샤역이 있다. 터키 최대의 공업도시이기도 한 이스탄불은 섬유·식품가공\·농기구·고무 등의 공업이 발달하였으며 군수공업도 중요한 몫을 차지한다. 이스탄불항은 전국 수입액의 70%, 수출액의 20%를 취급한다.
오후 7:13

트루바 (Truva)


트로야 ·트로이아라고도 한다. 호메로스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에서는 ‘일리오스’라고 불렸다. 스카만드로스강과 시모이스강이 흐르는 평야에 있는 나지막한 언덕(근대에 와서는 히살리크라고 불리었다)에 있다. 바다에서 6 km 정도 떨어져 있어 바다로부터의 습격을 받을 위험은 적었다. 그러나 바다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에게해(海)와 흑해(黑海)를 잇는 헬레스폰투스(다르다넬스해협)의 입구에 해당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어, 예로부터 번영을 누려 왔다.
독일의 고고학자 슐리만이 1870년부터 이곳의 발굴에 착수하면서 유적이 밝혀졌다. 도시의 유적은 9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최하층은 BC 4000년기(年紀) 말의 것으로, 성벽으로 에워싸여 있었다. 제2층에는 메가론식의 왕궁으로 짐작되는 건물이 있고, 이 층에서 많은 금 ·은 제품을 발견하였으며, 또한 이 층을 호메로스시대의 것으로 생각하였다. 슐리만은 이때 발굴한 유물들을 독일로 밀반출, 1881년 베를린박물관에서 처음으로 공개함으로써 찬란했던 트로이문화가 세상에 알려졌다.


1945년 베를린을 점령한 소련은 이를 탈취, 금 ·은 보물은 모스크바의 푸슈킨미술관에, 도자기류는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슈미술관에 수장하였다가 1995년 4월 푸슈킨미술관에서 다시 전시되었다. 그러나 그 후 슐리만을 도운 독일의 고고학자 되르프펠트는 아래에서 제6층에 해당하는 곳이 호메로스 시대의 것이라고 하였다(BC 15∼BC 12). 1930년대에 와서 미국의 블레겐이 다시 조직적으로 발굴하여 한 층 위인 제7층 A를 호메로스시대의 것이라고 수정하였다. 제7층 B는 철기시대 초기, 제8층은 그리스인이 이민(移民)한 아르카이크시대의 것이며, 맨 위층인 제9층은 헬레니즘시대 및 로마시대의 유적으로 이 무렵 도시는 ‘일리움’이라고 불리었다. 이 시대에 알렉산드로스 대왕도 원정 도중에 일부러 이곳을 들렀다.
오후 6:46

안탈리아 (Antalya)



안탈리아만(灣)에 면한 항구도시로, BC 2세기 페르가몬 왕국 시대에 건설되어 아달리아라 불렀으나 그 뒤 로마에 항복하여 135년에는 하드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이 지방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그 후 비잔틴·몽골\·베네치아·제노바 등에게 지배당했으며, 15세기에는 투르크 제국의 영토가 되었다. 지중해 어획물과 부근 농산물 및 양잠업의 거래 중심지이며, 잠사(蠶絲) 전문학교가 있다. 로마 시대의 유적, 셀주크 왕조의 이슬람 사원 등이 남아 있다.
오후 7:03

앙카라 (Ankara)


소(小)아시아 아나톨리아 고원의 북쪽 기슭에 위치하며, 해발고도 800∼1,000m의 사카리아강 상류인 앙카라강 연안에 있다. 아나톨리아 전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통로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도시로서의 기원은 고대 히타이트시대로부터 비롯된다. BC 25년에는 로마제국의 지배에 속하고 앙키라라고 불렀으며,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세워진 신전과 욕탕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그 뒤 페르시아·아라비아\·셀주크투르크·십자군 등에 의하여 점령·지배되었고, 14세기 후반부터는 오스만투르크에 속하여 아나톨리아 지방의 대상무역(隊商貿易)의 지방적 중심으로서 번영하였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후에는 터키를 재건하기 위하여 케말 아타튀르크(파샤)가 이끄는 국민군의 본거지가 되었으며, 1923년의 공화국 성립과 더불어 수도인 이스탄불을 대신하여 새로운 수도로서 발족하였다.


1925년 이후는 신시가의 건설과 함께 근대적 도시로서 크게 발전을 하였다. 앙카라는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뉘어 뚜렷한 대조를 보인다. 구시가는 북동부의 앙카라 구릉에 있는 오스만시대의 앙카라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좁고 정비되지 않은 통로와 바자르(시장)를 중심으로 가옥이 밀집해 있으며, 시내에는 많은 사원과 히타이트박물관(고고학박물관)·민속박물관이 있고, 부근에는 선사시대와 고대, 또는 비잔틴시대 등의 유적도 풍부하다. 구시가의 남쪽에는 도시계획에 바탕을 둔 정연한 신시가가 자리잡고 있다. 중앙을 관통하는 아타튀르크 거리 연변에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관공서·은행\·오페라하우스 등 근대적 건축이 이어져 있고, 앙카라대학도 있다. 그 밖에 시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구릉에는 케말 아타튀르크의 무덤이 있다. 앙카라는 교통의 중심지로서 농산물의 집산지이며, 공업으로는 시멘트 ·금속 등의 공장 외에 트럭공장이 있다.
오후 7:07

사프란볼루 (Safranbolu)


흑해 연안에 위치한 사프란볼루는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으로, 터기의 전통가옥들이 잘 보전되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다. 대부분의 주택들이 19세기 오스만제국시대 것으로써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숙박시설로 사용되고 있는 곳도 많다.